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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출판사 소식

광고도 질소포장이 되나요? 네. by 주영



"개인작업자들의 기고를 중심으로 발간하는 문화잡지" 


<싱클레어> 53호에 호랑이출판사 김현아 작가와 저(주영) 두 사람의 글이 실렸어요.



책을 받아보고 정말로 기뻤답니다.


저(주영)는 뻔뻔스럽게도 대놓고 호랑이출판사 광고글을 보냈어요. ^^;


어설픈 광고글을 실어주신 싱클레어 편집인 여러분 고맙습니다. 



호랑이출판사의 책과 독립잡지 <싱클레어>를 함께 알리고자


<싱클레어> 53호에 기고했던 글을 아래에 옮겨 볼게요. 










 광고도 질소 포장이 되나요? 네. 

 by 주영



 장면 하나. 종편채널인 조선TV를 즐겨 보시는 아버지와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먹었다. TV에서는 진실규명을 위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장기간 농성하고 있는 유가족들이 나왔다. 아버지는 찌푸린 얼굴로 “나라에서 그만큼 보상 해줬으면 됐지, 대통령한테 뭘 어떻게 해 달라는 거냐”고 하셨다. 납득할 수 없는 사고로 가족을 잃은 분들은 졸지에 보상금 더 타겠다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뢰배가 되었다.


 장면 둘. 친구 A는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이었다. A는 직장에 다니는 동안 자신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남의 일인 양 외면하는 동료들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없었다. 회사를 나오던 날까지도 동료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마치 A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동료의 고충에 귀 기울이기보다 그를 부적응자나 낙오자쯤으로 단정 짓고 등 돌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 A는 큰 상처를 받았다.


 장면 셋. 친구와 함께 학교 도서관에 가던 길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기에 봤더니 길 한가운데 고양이 무리가 있었다. 어미고양이 한 마리와 새끼고양이 세 마리였는데, 새끼들이 하나같이 마른데다가 눈병에 걸려 있었고 그 중 한 마리는 다리까지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지켜보던 이들 중 한 분이 급히 먹이를 사 왔고 고양이들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지나던 이들은 비쩍 말라 사람을 피하지도 못하는 새끼고양이들을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고, 지나갔다. 식사 중인 새끼고양이의 꼬리를 들춰보곤 “야, 암놈이네!” 하며 왁자지껄 웃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장면 넷. 아직은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던 내 어린 시절, 나에게도 함께 놀던 친구들 무리가 있었다. 당시 우리는 죄다 ‘착한놈 대 나쁜놈’ 이라는 단순한 세계관을 지닌 후뢰시맨, 마스크맨 따위의 전대물에 심취해 있었고, 우리 동네에서는 당연히 우리가 ‘착한놈’이었다. 반면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우리와 잘 어울리지도 않고 늘 표정이 어두운 친구 하나는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물리쳐야 할 ‘나쁜놈’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 친구를 미워하고 비난했다. 


 “그 사람들 진짜 이상한 거 맞제?”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이 지난 지금도 A는 가끔 울컥하는 모양이다. “맞다. 그것들이 인간이가?!” 나는 오늘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A를 위로하다가 문득 몇 가지 장면을 떠올렸다. 아버지 미간에 패인 주름과 비쩍 마른 새끼 고양이들 그리고 어릴 적 이유 없이 미워했던 그 친구의 얼굴이 뒤섞인 그 장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지나치게 취약한 존재’ 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본래 선하거나 악하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나와 다른 타자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미워한다. 공존의 길을 모색하기보다 타자와 나를 구분 짓고 상대의 파멸을 전제로 한 나의 생존에 골몰한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 본디 악해서라기보다는 너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해와 관용보다 대결과 혐오가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이 세계에서 말이다.


 나는 최근 일 년간 친구 H와 함께 ‘호랑이출판사’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만들어 세 종의 책을 출간했다. 집단의 이름 아래 파괴되는 개인의 삶을 다룬 그림책 <간>과 세월호 사고를 지켜보며 저마다 마음속에 자리했던 생각들을 엮은 <세월호 생각>, 그리고 청소년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와 여행하는 동안 쓰고 그린 글과 그림을 엮은 <어서와, 이런 여행책은 처음이지?>가 그것이다. (이거, 광고 맞다.) 얼마 전 H의 드로잉 수업에 참가했다가 “당신은 왜 표현하려 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에게 그것은 “당신은 왜 책을 만드나요?” 라는 질문이었고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던 나는 대답 대신 횡설수설,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마 대결과 배제, 혐오의 언어만이 가득한 이곳과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승자와 패자, 생존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 놓고 서로를 상처 내는 익숙하고도 잔인한 장면이 아니라, 잘나고 못난 것, 강하고 약한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서 자연히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낯설지만 반가운 그 장면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이 취약한 존재라는 말은 인간(의 가능성)을 믿지도 안 믿지도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너무 쉽게 타자를 배척한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얼마든지 공생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호랑이출판사가 앞으로는 또 어떤 책을 만들게 될 지 잘 모르겠다. 재미를 잃거나 기력이 쇠해지면 그만둘 수도 있겠다. 만약 다른 책을 만들게 된다면 지난 일 년간 우리가 그래온 것처럼, 다른 누구보다 먼저 우리 스스로에게 “괜찮다” 위로하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책이라면 아마 독자들도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호랑이출판사는 오늘도 독자를 기다린다. tigerbooks.tistory.com










Sinclair vol.53 _ 세월 가면

00. 피터 - 싱클레어가 싱클레어에게
01. 류예지 - 짐짓, 모르는 척
02. 배춘경 - 21일 
03. 주영 - 광고도 질소 포장이 되나요, 네 
04. 김경현 - 다짐의 순간 
05. 추선미 - 후끈밤 낭독회 
06. 박혜민 - 잠깐 머물러 가는 매혹의 도시, 씨올라 
07. 오귤희 - 어떤 불청객 
08. 박기팔 - 나의 출근길 
09. 박주호 - 시험 기간에 공부하기 귀찮아서 그리는 그림 
10. 조상민 - 음식만화 이야기 
11. 홍학순 - 오늘의 잉여활동 
12. 고성배 - 꿈 그리고 아빠 
13. 안성민 - 모기 그리고 아들 
14. 권진주 - 잊혀진 여름 
15. 김탕 - ㅇㄹㅂㄹ의 웰컴파티 
16. 현아 - 소울 카드 
17. 전솔비 - 보이지 않는 장마가 끝나고 
18. 홍은 - 삶의 톤을 한 음 반 정도를 올린 터키 여행 
19. 탁도연 - 사진 속 시간 찾기 
20. 공혜진 - 꾸준하게 문득 
21. 홍학순 인터뷰 
22. 김탕 - 레시피 드로잉 #2 
23. 피터 - 신촌서당 이야기 
24. 이원희 - 아빠는 부재중 
25. 정소민 - 발로 걸어 만든 이대입구 옷집 지도 
26. 박찬응- 나의 사막, 나의 사랑 
27. 오수말 - 평안감사바틀비시리즈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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