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랑이출판사에게

독자 리뷰 릴레이 ⑦ 박지원 님 <그게 너고, 나야>


독자 리뷰 릴레이 ⑦ 박지원 님 <그게 너고, 나야>

밝은 눈을 가진 독자님을 섭외해 《내 방구같은 만화》의 리뷰를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감동의 리뷰들, 하나씩 소개해 드릴게요. 일곱 번째 리뷰 주자는 얼마 전 쿠바 여행을 다녀오신 박지원 님입니다. 여행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깊은 공감의 글을 보내주셨어요. 이제는 점점 원작을 위협하고 있는 리뷰 릴레이 일곱 번째,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 * * * *




그게 너고, 나야. 


쓸데없이 눈물이 나는 날이 있다. 어느 날은 과외를 하러 갔는데, 그들이 사는 집이 겨울인데도 너무 환하고 따뜻해서, 욕실 타일이 투명해서, 어머님의 피부에 주름 하나 없어서, 간식으로 통통한 딸기가 나와서, 날이 적당해서(?)… 따위의 이유로 갑자기 서러워졌다. 캄캄한 밤에 버스를 타고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청승맞게 눈물이 났다. 이어폰에선 하필 이소라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아, 찌질한 나년. 나에게도 어김없이 ‘시바신’이 강림했다. 두렵다. 막막하다. 나는 왜 이럴까.    


몇 년 전 처음으로 원룸을 구했을 때, 닦아도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오래된 욕실 타일을 문지르면서 알았다. 내 자유는 비루하구나.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돈이 없다─돈이 없어도 견딜 수 있을 만큼 내게 열정과 재능이 있는 걸까─난 왜 이 따위지… 도돌이표가 되어버린 질문들과 웬 종일 계산기를 두드리며 남은 돈을 셈하고 또 셈하는 전혀 근사하지 않은 생활들. 설렘과 즐거움은 잠깐이지만 불안은 시도 때도 없었다. 생존에는 ‘잠깐 멈춤’이 없으니까. 오늘 하루가 어떠했든 내일도 살아야 했다. 쉬는 날엔 웅크리고 누워서 쥐죽은 듯 잠만 자다가, 밤이 되면 도리어 가슴이 쿵쿵거렸다. 그러니까 방구만화는 사실 내 얘기다. 


만화를 보면서, 마음으로 늘 응원하지만 어쩐지 애매하게 가까운 그의 맑은 얼굴을 생각했다. 역시나 찌질한 인간인 나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작업실을 차리고 이런저런 일을 뚝딱 해내는 것도 다 용감하고 멋지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숨쉬기 위해 집어든 펜이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인간의 마음엔 저마다 깊은 구덩이가 있다. 누구에게나 구덩이 속에 켜켜이 쌓인 시커먼 마음의 먼지들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꿋꿋이 한 삽 가득 구덩이 바닥을 퍼 올려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오래 참은 방구를 뿡하고 뀌듯 말이다. 거봐. 조금 구리지만 시원하지? 그래서 그는 여전히 용감하고 멋지다.


그를 만나면 쑥스러운 얼굴로 말해주고 싶다. 한밤중에 이불을 폭 덮고 누워 방구만화를 보다보니 낄낄거리다가 훌쩍거리다가 어느새 시큰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고. 여전히 내 자유는 너무도 비루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예상치도 못한 길에서 만나는 이렇게 맑고 다정한 얼굴들 때문에 그래도 즐겁게 견딘다고. 방구를 뀌어줘서 고맙다고. 그게 당신이고, 나라고.


《내 방구같은 만화》 구입러